남명 조식 유적지
조선 중기의 유명한 유학자인 남명 조식의 유적이다. 조식 선생은 많은 벼슬이 내려졌으나 모두 거절하고, 학문연구와 후진양성에 평생을 보냈다.
남명(南冥) 조식(曺植)(燕山君 7년(年) 1501∼선조(宣祖) 5년(年), 자건중(字楗仲), 별호산해(別號山海), 본관 창녕(本貫昌寧))은 남다른 재질(才質)과 용공(用工)(절제(節制))으로 일찍부터 학덕(學德)을 갖추어 대성(大成)하였으나 사환(仕宦)(벼슬)에는 나아가지 않고, 평생(平生)동안 선비와 처사(處士)(산림(山林))로서 굳건히 일관(一貫)하였다.
산천재
지리산 산청 '남명 조식'이 노년에 머물렀던 곳.남명 조식(1501~1572)은 1501년 경남 합천군 삼가면 토동에서 출생하여 어린시절 한양으로 옮겨 쭉 그곳에서 자랐다.19세 때 기묘사화로 조광조 등이 죽음을 당하고 숙부도 이에 연루되어 화를 입는 것을 목격하고 잘못된 정치의 폐해를 탄식하였다.30세 때 처가가 있는 김해의 신어산 아래에 '산해정'을 짓고 학문에 정진하면서 제자들을 양성하였다. 48세 때에는 다시 고향인 삼가의 토동으로 돌아와 '놔룡정'과 '계부당"을 짓고 제자들을 양성하였므며,61세에 지리산 아래 산청 덕산으로 옮겨 '산천재'를 지어 여생을 보냈다고 한다 .
동의보감촌
반자(시도유형문화재 362호)
1701년 용계사 화장암에서 조성된 것으로 금속으로 만든 일종의 타악기입니다. 금고 또는 금구라도도 하며 절에서 대중을 불러 모으거나 급한 일을 알리는데 사용했던 것입니다.
남사 예담촌
원통보전 | 관세음보살상(앞)과 천수천안 관세음보살도(후면) |
⑫원통보전
원통보전은 천광전과 대웅전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작고 아름다운 전각입니다. 관세음보살(목조 보살상 및 복장유물, 도지정 문화재 제664호)을 모시고 있는 이 전각에는 모든 환난을 구제하는면서, 중생들을 이롭게 하고, 불가사의한 위신력으로 중생을 돕는다는 믿음이 있어 불자들의 기도가 끊이질 않습니다. 참배한 후 법당 안 왼쪽 뒷벽에 백의관음상도 친견해 볼 것을 권합니다. 원통보전 앞 석등 또한 이채롭습니다.
사리전(선방)
⑯사리전
비구니스님들의 선방입니다. 법일스님이 대원사에 오신 후 제일먼저 지은 건물입니다. 법일 스님은 상량식 때 박수를 치시면서 ‘도인들이 쏟아져 나와라!’ 축원했답니다. ‘중이 됐으면 공부해라. 공부를 못하게 생겼으면 오롯이 뒷바라지해라’.라는 법일 스님의 이 발원이 오늘날 대원사의 정신으로 내려오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50여명의 비구니스님들이 안거(安居)를 합니다. 여름과 겨울철에 각각 3개월간 산문(山門)에 머물면서 참선 수행하는 것입니다. 여름 하안거와 겨울 동안거로 나뉩니다. 참선은 화두(話頭)를 붙들고 앉아서 의문을 타파하는 불교 수행법입니다.
봉상루(누각)
⑤봉상루
봉상루는 대원사 경내의 출입문 역할을 하는 누각입니다. 방장산 대원사라는 현판이 걸려있습니다. 2층에는 수백권의 책이 비치되어 있어 자유롭게 독서를 할 수 있고 차를 마실 수 있는 휴식공간입니다.
지리산 대원사 유평계곡
지리산 대원사 계곡(도 기념물 제114호)
지리산 유평계곡 길은 문광부가 지정하는 ‘걷고 싶은 아름다운 길’로 1991년에 지정되었습니다. 대원사를 지나 유평마을까지 계곡을 따라 만들어진 숲길입니다. 봄·여름·가을 계절마다 피어나는 야생화들과 여러 나무들 그리고 겨울에는 설경이 돋보입니다. 계곡의 시원한 물줄기가 더해져 사계절 아름다운 계곡입니다. 세파에 찌든 몸과 마음을 씻어내기에 더없이 좋은 곳, 대원사 계곡은 말 그대로 천연기념물입니다. 비온 후에는 깨끗하게 단장한 산허리로 자욱한 운무가 피어오르는데 가히 선경(仙景)이라 불리울만 합니다.
대원사 전각